'4.19 혁명'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4.19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11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되는 1960년...


당시 자유당 이승만 정권은 헌법을 개정해가면서까지 12년째 독재를 이어오고 있었다.

야당의 선거운동을 방해하는 것은 약과..

득표수를 조작하고... 몇명씩 조를 짜서 누구를 찍는지 감시하고... 유권자를 무력으로 위협하고........

3월 15일에 있을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서도 마찬가지였다.



2월 28일...

대구에서는 야당인 민주당의 선거 유세가 예정되어 있었고,

정부는 학생들의 참석을 방해하기 위하여,

일요임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학생들에게 등교를 지시하였다.

학생들은 이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였고,

이것이 바로 4.19 혁명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3월 15일...

역시나 부정적인 선거가 자행되었고,

이에 격분한 마산시민, 학생들이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에서 경찰이 사용한 최루탄과 총기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살상되었고..

마산상고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마산을 방문 중이었던 전북 남원 출신의 김주열 군이 행방불명되었다.

김주열 군의 어머니 권찬주 여사는 아들을 찾기 위해 마산을 방문했고,

혹시나 시신이 있을까.. 시위 참여자들을 구타했다는 시청 주변의 연못까지 뒤졌으나,

결국 아들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김주열 군의 어머니는 남편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듣고 마산을 떠났다.


그런데, 어머니가 남원으로 떠난 바로 그 날인 4월 11일...

경찰이 발포했던 최루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 군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끔찍하지만.. 잊을 수 없는.. 너무나 안타까운 사진.

고 김주열 군의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격노한 마산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고,

이는 곧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4월 18일...

서울의 고려대학교 학생 3천여명은 교내에서 선언문을 낭독하고 시가로 행진하였으며,

이때 고려대학교 학생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이 합류하였다.


그런데, 평화로웠던 시위가 마무리되고,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가던 중 참변이 발생하고 말았다.

종로4가 천일백화점 근처에서, 경찰이 동원한 반공청년단이라는 이름의 정치깡패들에 의해

유혈 낭자한 테러가 자행된 것.

이 정치깡패들의 우두머리가 후에 사형을 당한 정치깡패 1호 이정재였다.

당시 이들은 쇠망치, 벽돌, 쇠갈고리, 곡괭이 등으로 학생들을 폭행했으며,

수백명의 학생들이 순식간에 쓰러져갔다.



그리고 4월 19일...

각지의 학생들을 비롯하여, 무수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부정 선거를 척결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구호가 드높았다.





이승만 정권은 이러한 학생들과 시민들을 무장 경찰로 진압하고자 했다.







급기야 4월 25일에는

교수들까지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시위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4월 26일...

이승만은 전 국민의 힘에 굴복하여 하야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고,

3월 15일의 선거는 전면 무효화되었으며,

이승만은 후일 도망치듯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이승만과 함께 부통령에 당선되었던 이기붕은 육군장교였던 아들이 권총을 쏘아 전가족이 자살을 하였다.



그야말로 4.19 혁명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 혁명이라 할 수 있다.

매년 이러한 4.19 혁명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고,

서울의 몇몇 대학들은 4월 19일에 즈음하여 4.19 마라톤대회를 연다.

(고려대는 4월 18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4월 18일에 한다고 한다)

올해 4월 18일에는 고 김주열 군의 사건과 마산의 3월 15일 그 날의 일을 담은

"누나의 3월"이라는 드라마가 마산 MBC에서 제작되어 방송되었다.

(마산 MBC에서 무료 다시보기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특히 올해는 4.19 혁명 50돌을 기념하기 위하여, 4월 18일, 당시 현장을  걷는 민주올레가 열렸다.

여기서 당시의 교복과 교련복을 입고,

당시의 구호인 "못살겠다 갈아엎자, 이대통령 하야하라"라는 현수막을 든 퍼포먼스도 진행되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 사진 펌
(이 현수막의 사연도 우습다. 4.19 혁명 기념 퍼포먼스에서 이대통령 하야하라는 문구를 사용한 것인데, 현 대통령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이름을 표기하라는 경찰의 요구에 의해 "승만"을 추가 기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민주올레 일정이 끝나고 참가자들이 귀가하는 중

갑자기 경찰들이 달려들어 이 퍼포먼스 참가자들을 연행했다고 한다.



동영상을 보니 그야말로 보쌈을 해갔드라.. ㅡ,.ㅡ

이 소식을 접하고 어찌나 어이가 없었던지...


50년전 4월 18일 바로 그 날에..

귀가하는 학생들을..

쇠몽둥이를 들고 덤벼 폭행했다던 그 정치깡패들은 아닐터이다.

시간은 훌쩍 50년이나 흘렀건만......

한숨이 절로 나는건 왜일까.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오며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 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 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먹고
저녁도 안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그리고 25일과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말 안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 1960년 당시 수송국민학교 4학년 강명희 양의 글



'잡담0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을 위한 행진곡  (0) 2010.05.18
작은 연못  (2) 2010.04.12
MB퇴진 달력사진 공모전...  (0) 2009.09.25
Posted by 사람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