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정조 말기... 서로 다른 명분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여러 사람의 이야기이다.
물론 자주 얼굴을 보았던 배우들도 있었지만, 등장인물들 모두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태풍태양에선가 처음 보고 마음에 들었던 양만오역의 이천희, 첫인상은 안예쁘다였지만 보면 볼수록 단아하고 예뻤던 이나영역의 김하은, 신인인줄 알았더니 많이 알려진 뮤지컬 배우였던 정말 순수하고 어벙한 느낌을 줬던 박상규역의 진이한...
정조역이 무척 잘 어울렸던 안내상, 정조의 계조모역을 했던 정애리, 오랜만에 얼굴을 본 조상궁역의 박선영, 박상규를 사모하는 퇴기 월향역의 도지원, 박상규와 절친한 형 서주필역의 한정수, 늘 응큼하게 웃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던 강도술역의 배성우, 소지섭을 닮은 소천역의 조성일.... 아... 등장인물들 다 적고 싶지만 힘들다.
아무튼 정말 어느 누구 뺄 사람 없이 드라마를 꽉 채워주었다.
연출에 곽정환, 극본에 박진우.
정말 아름다운 영상에 정말 주옥같은 대사들이었다. 말투의 어감도 왠지 기분좋은 느낌이었다.
아 그리고 음악! 영상과 어우러져 정말 절절하다 생각했는데 박진영이 참여하고, JK김동욱, 원더걸스의 선예와 예은 등등이 불렀단다.
OST를 파나 봤더니 절판이다. ㅡ,.ㅡ 어디 파는데 없나.
물론 이 드라마가 100% 완벽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지만, 보는 내내 '아~ 정말 잘 만들었다, 이런 드라마 흔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에 왠지 접목된 것 같은 정치 이야기...
같은 퓨전 사극이라 그런지 "다모"랑 비슷한 느낌을 주는 드라마였다.
제목처럼 올바른 삶이 어떤 것인가 한번쯤은 생각해보게 하는 드라마. 총 8편의 짧은 드라마이지만, 긴 여운을 가지게 해주는.. 그리고 왠지 씁쓸하고 가슴아린 느낌을 주는 드라마.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 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야 세상 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경성스캔들을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한고은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어쩐지 가사나 가락이 익숙한 노래였다. 채널을 돌리다 경성스캔들의 마지막 장면을 보게되었는데, 애물단의 단체사진과 함께
먼저 가신 분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이 땅에서 마음껏 연애하고, 마음껏 행복하십시오.
라는 자막이 올랐다.
정말.... 알게 모르게 해방을 위해 애썼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드라마속의 여경이 같은.. 송주 같은.. 완이 같은.. 수현이 같은.. 그런 젊은이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은 생각에 코끝이 찡했다.
찾아보니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이 꽤 많았다. 들국화.. 한대수.. 안치환.. 물론 그 가수들에 비해 가창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한고은의 희망가는 참으로 애절하다.
'국내 대중가요의 고전'으로 통하는 이 노래의 작곡자는 미국인 제레미인갈스. 그가 1850년 영국 춤곡을 바탕으로 새롭게 작곡할 때만해도 '우리가 집으로 돌아올 때'라는 제목의 찬송가였다.
그후 이 노래는 일본으로 전래되면서 '새하얀 후지산의 뿌리'(眞白き富士の根)라는 진혼가로 바뀐다. 1910년께 일본에서는 여학생 12명이 강을 건너다 배가 뒤집혀 몰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때 비명에 간 꽃다운 소녀들을 추모하기 위해 미스미 스즈코(三角錫子)라는 여교사가 이 곡에 일본인 취향의 시를 붙임으로써 이 노래는 일본전역으로 퍼졌다.
국내에선 1920년대 망토 차림에 모자를 쓰고 바이올린을 켜면서 창가집 악보를 파는 악사가 등장,이 노래를 연주하면서 이 노래는 대중가요로 탈바꿈한다. 당시 이 곡은 '오동나무 창가집'에는'탕자경계가'(蕩子警戒歌), '신유행창가집'에는'탕자자탄가'(蕩子自歎歌)라는 각각 다른 제목으로 수록됐으나 가사는 모두 지금과 같다. 1922년에 발간된 '최신중등창가집'에는'일요일가'(日曜日歌)로, 1934년에 출간된 '방언찬미가'에는 '금주(禁酒)창가'라는 제목으로 가사가 바뀌어 실리기도 했다. '희망가'라는 제목은 1920년께 민요가수 박채선(朴彩仙), 이류색(李柳色)이 무반주 2중창으로 녹음할 때 붙여진 제목이다. 이어서 1925년 민요가수 김산월(金山月)이 음반으로 취입했으나 대중을 파고들기는 1930년 국내 최초의 대중가수 채규엽(蔡奎燁)의 레코딩을 통해서였다. 일제시대 망국의 한과 실의를 달래면서 각성을 촉구했던 이 노래는 처음엔 연극 막간에 불렸다.
현실도피나 퇴폐성을 나무라는 설교조의 가사 때문에 서민들 사이에서는 '절망가''실망가'로 통하기도 했다.
CQN명동에서 처음 본 "우리학교".
혹가이도 조선학교 아이들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상영시간이 2시간이 넘지만, '더 길었으면, 저 아이들을 좀 더 봤으면..'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전 초초초 감동이다.
2007년 7월 5일부터 하이퍼넥 나다에서 재상영중이다.
"우리학교"의 프롤로그격인 "하나를 위하여"라는 다큐도 같이 상영한다.
둘 다 김명준 감독의 작품인데, "하나를 위하여"는 조선학교 촬영을 먼저 시작했던 故 조은령 감독(김명준 감독의 아내)을 추모하는 다큐로, 조선학교 촬영을 허가받는 과정 등이 담겨있다고 한다.